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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사례

법정에서 합의였다고 말하는 상대를 마주한 날, 그리고 징역 7년

피해자로서 고소한 사건에서 상대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을 무너뜨리고 중형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경과입니다.

피해자 대리 징역 7년

Ⅰ. 사건의 개요

이번 글의 의뢰인은 고소를 한 쪽입니다. 사귀던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침해를 겪었고, 그 순간들이 영상으로 남아 온라인 채널에 뿌려졌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사람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자료까지 만들고 퍼뜨린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곳은 상대를 찾아 주는 애플리케이션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고소장을 냈으나 법정의 공기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상대는 어느 것 하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준비해 온 설명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애초에 그런 형태의 관계를 약속하고 만나 왔으며 오간 모든 일이 서로 원해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이 받아들여지면 의뢰인이 겪은 일은 법적으로 없던 일이 됩니다. 중형은커녕 단 한 달의 실형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Ⅱ. 사건 쟁점

피해자가 형사재판에서 서는 자리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원칙적으로 증인의 지위입니다.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을 이끄는 사람은 검사인데, 검사는 국가를 대리하는 사람이지 피해자 개인의 대리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대가 정교한 설명을 준비해 오면 그것을 조목조목 반박할 사람이 따로 필요해집니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시 정리하고, 유리한 자료를 찾아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이 피해자 측 대리인의 몫입니다.

적용된 죄명의 형이 가벼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강간죄는 3년 이상, 촬영물의 반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제작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내세운 틀이 통하면 이 숫자들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대는 세 갈래로 나누어 부인했고, 하나라도 받아들여지면 그 혐의가 사라지는 구조였습니다.

Ⅲ. 강창효 변호사의 조력

변호인이 준비한 것은 엄한 처벌을 구하는 의견서였습니다. 상대가 세운 세 갈래의 설명을 하나씩 떼어 내 어디가 성립하지 않는지 적어 냈습니다.

1) 원래 그런 관계였다는 주장

설령 그런 형태의 관계를 약속하고 만난 사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면책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 미리 받아들였다는 사정이 있어야 하고, 받아들였다고 인정하려면 원치 않는 순간에 곧바로 브레이크를 걸 장치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어떤 말이 나오면 그 즉시 전부 멈춘다는 식의 사전 약속이 그것이며, 이를 부르는 이름이 세이프워드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런 장치가 아예 없었습니다. 싫다는 뜻을 어떻게 전할지조차 정해 둔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상대는 아프다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멈췄다고 했지만, 남아 있는 영상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또렷하게 그만두라는 뜻을 내비치는 와중에도 상황이 계속되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습니다.

문제가 된 네 차례 역시 사전에 오간 말 없이 느닷없이 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상대 스스로 법정에서, 그때마다 의뢰인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기분이 상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아무 말 없이 시작한 일을 두고 둘 다 원했다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라는 이름을 붙여 한쪽만의 폭력적인 행위를 눈감아 주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2) 그런 일이 없었고 공황 상태였을 뿐이라는 주장

두 번째로 상대는 그런 일이 아예 없었다고 했습니다. 의뢰인이 갑자기 숨이 가빠져 밖으로 뛰어나간 것뿐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설명은 건물에 달린 카메라가 찍어 둔 화면 한 편으로 끝났습니다.

화면 속 의뢰인은 옷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한 채 문을 열고 뛰쳐나옵니다. 그러고는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몸을 붙입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고 발도 맨발이었습니다. 숨이 가빠 나온 사람이라면 바람이 통하는 바깥으로 향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건물 안쪽으로 파고들어 몸을 감춘 것은 누군가를 피해 달아난 사람의 움직임입니다.

잠시 뒤 상대가 따라 나와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결국 숨어 있던 의뢰인을 찾아내 다독인 뒤 집 안으로 데려 들어갑니다. 변호인은 이 장면들을 벌어진 차례대로 묶어 제출했고, 재판부는 의뢰인이 강제적인 상황에 놀라 뛰쳐나온 것으로 보았습니다.

3) 촬영과 유포에 모두 동의했다는 주장

마지막 갈래는 영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상대는 찍힌 자료 모두가 의뢰인이 허락한 것이며 온라인에 올린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의뢰인의 설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았습니다. 사귀기 시작할 무렵 남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부는 응했지만, 침해가 벌어지는 상황을 찍는 데까지 허락한 적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자료 가운데는 상대가 찍게 해 주면 놓아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헤어지는 것을 미끼로 촬영을 요구한 대목까지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상대의 말은 이렇게 됩니다. 그 일 자체를 거부하고 있던 사람이 그 모습을 찍는 것에는 흔쾌히 응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찍은 것도 퍼뜨린 것도 모두 의뢰인의 뜻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고 인정했습니다.

Ⅳ. 결과

선고된 형은 징역 7년이었습니다. 형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동과 청소년을 다루는 기관, 그리고 장애인을 다루는 기관에 각각 3년 동안 취업할 수 없게 되었고, 형을 다 살고 나온 뒤에도 5년간 보호관찰을 받게 되었으며, 성폭력 치료 과정 80시간을 이수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려졌습니다.

양형의 이유에는 상대가 연인 관계였던 의뢰인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이용했고 인격을 무너뜨려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켰다는 점이 적혔습니다. 모든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진지한 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법정에서 상대가 태연하게 다른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사실과 어긋나는 지점을 찾아 내미는 일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그럴듯한 설명을 준비해도 어긋나는 곳은 남기 마련이고, 그 지점을 제시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